예수 르네상스 & 에레모스

1. 기독교계(Christendom) 안에서 <사람이신 예수 이야기>의 회생(回生)을 꿈꾼다.
<예수 르네상스>(홈피)는 이것이 본래(혹은 바울)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였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비좁아진 지구촌의 일상이 되어버린 테러와 대응테러(counter-terror)의 악순환 속에서 포로처럼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자들(under-privileged)에게 여전히 아니, 지금이야 말로 참으로, <사람이신 예수 이야기>가 복음이 될 수 있다는 소명에서 출발하였다.

2. 노예의 땅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신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히브리인들의 여정 한가운데는 “광야 40년”이라는 고난의 토막이 있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넉넉히 들아갈 수 있었던 목표 지점을 긴긴 세월 동안 우회하도록 만든 가혹한 신의 섭리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훗날, 바벨론 포로기에 들아와서, 그것은 우리들의 자정(自淨) 시간이라는 거룩한 시간으로 체험하였다.
예수께서 그의 스승 세례자 요한에게서 기초 학문을 수학하면서 하늘 음성을 들은 후, 반드시 거쳐야 했던 자정(自淨) 시간이 있었으니 곧 <광야 40일> 간의 시험이었다.
히브리인들이 신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한 곳이 광야요, 예수의 스승 세례자 요한이 주님 길을 예비한 곳이 광야요, 하늘의 아들 예수께서 자기를 준비하신 곳이 또한 광야가 아닌가? “악마적인 세상 지혜”(약3:15)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이 광야요, 하늘 음성을 듣고 자기를 준비하는 곳, 자성의 매체가 광야(에레모스, Eremos)이다.

“예수 르네상스”(홈피)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하려는 이들을 위하여 능히 <광야 40일/년> 역할을 하고자 한다. 동영상 클립이 광야의 외침(voice of crying, 막1:3)이라면, “에레모스 Eremos, 신학-쪽지, <광야>)는 테러 속의 엘리야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었던 “세미한 소리”(voice still small, 왕상19:12)가 될 것이다. 즉 “에레모스”는 외치는 자의 소리를 조용히 다시 풀어내 줄 것이다. 자정을 준비하려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하여.